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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조선시대 양반의 아들 교환한상우-아주대학교 사학과 조교수현대 한국인 대부분은 전통시대 입양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조선시대의 입양은 오늘날의 입양과 크게 달랐다는 사실만으로는 조선시대 입양에 대한 흥미를 느끼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볼 수 없는 그 관습이 당시에는 얼마나 흔한 것이었으며 필수적이었는지, 또 개인의 삶은 물론 조선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게 된다면 선조들을 이해하기 위해 전통시대 입양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 이야기는 한국 전통 가족문화의 특수성을 잘 보여주는 조선의 입양 규정 및 관습 그리고 입양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를 통해 전근대 입양 문화가 언제 어떻게 유래하였는지 그리고 그것이 조선시대의 가족은 물론 친족 공동체의 변화와 어떤 관련성을 가지는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를 기대한다. -
조선시대 양반의 부부 생활과 이혼박경-건양대학교 강의전담교수'1704년(숙종 30) 즈음 유정기는… 처의 허물을 들어 세 번이나 관에 이혼시켜 주기를 청원했지만 허락받지 못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사적으로 처를 버려 혼인 관계를 해소하기도 했지만 관원들이나 관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함부로 처를 버릴 수 없었다. 사헌부에서 이유 없이 처를 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처벌 받을 수 있었고, 관직 진출에 장애가 될 수도 있었다. 처를 버린 행위 때문에 발생할 불이익을 염려한 사람들은 관에서 이혼을 허락받아 공식적으로 이를 인증받고자 했다. 그러나 유정기의 사례에서처럼 이는 쉽지 않았다.' 이처럼 기처를 규제하고 이혼을 허락해 주지 않았던 정책이 과연 조선시대 실제 개인의 삶을 안정시키고 부부의 정의情誼를 보호할 수 있었을까? 이것이 이 이야기에서 조명하고자 하는 주제이다. -
활 쏘는 사람들과 나무 심는 마을정수환-한국학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조선시대 동계는 예전에 양반들이 지역의 권력을 잡기 위해 동원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었다. 그래서 마을 안에 권력과 갈등이 항시 작동했다고 보았다. 그럴 수도 있다.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몇백 년 동안 같은 마을에 함께 살면서 동계를 작동한 사실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바로 공동의 이익을 함께하기 위한 호혜와 협동의 지혜가 여기에 있었다. 호혜와 협동의 지혜는 과거의 유산에 그치지 않고 1970년대 마을 가꾸기와 새마을 운동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 대한민국은 이런 저력이 작동해서 새마을 운동을 성취하고 인류사에 전례가 없는 농촌개발 성공의 신화를 만들었다. 세계는 한국의 새마을 운동의 경험을 함께하기 위해 주목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조선시대 동계는 '오래된 미래'라고 하겠다. -
조선시대 사람들의 더불어 살기, 향약이광우-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연구교수예전처럼 향약의 4대 강목을 실천하거나 그 공과를 기록하는 선적, 악적의 운영은 현대 사회에서는 어렵다. 그러나 각 공동체에서는 구성원들이 삶의 터전을 함께 일구어 나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전통시대 향약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시대도 다르고 삶의 형태도 많이 변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 땅의 사람들은 공동체 속에서 삶을 영위한다. 변화한 시대에 맞추어 전통 시대의 가치를 올바르게 계승한다면 현대 사회에서도 향약 정신은 지속 가능할 것이다. -
한강, 그 곁 사람들유승희-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 연구교수조선시대 도성 밖 사람의 주요 구성원이면서 도성 안 사람과 구별되는 강민의 존재와 생활에 관한 이야기다. 강민 이야기에 앞서 그들의 생활 기반이었던 한강이 조선시대에서는 어떠한 위치에 있었으며 국가 차원에서 어떻게 운영, 관리되고 있는가를 얘기한다. 조선시대 이야기이므로 '한강'은 '경강'이라 지칭했다. 강민과 관련해서는 조선시대 서울 사람들이 도성 안 경민과 강민으로 구분해 인식한 양상, 강민의 구성, 경제적 처지 등 서울 신흥 주민으로서의 강민의 모습을 찾아본다. -
섬주민, 공간을 기획하다김경옥 -
조선의 지방의국, 공공의 실천장김호이 책은 조선 시대 지방 의료 기관인 의국(醫局)의 설립과 운영을 사회·역사적 맥락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소개하고 있다. 특히 기존 연구들이 조선 후기 사회를 '관 주도→사족 주도→시장 주도'의 근대주의적 도식으로 단순화하여 지방 의료사를 설명해 온 경향을 비판하며, 성리학의 공공성과 재지 사족(在地士族)의 공적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의국의 의미를 재조명한다. 저자는 영주의 제민루, 강릉 약국, 상주의 존애원등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의국 운영이 국가의 지방 통제와 사족들의 향당(鄕黨) 공공화 노력이 결합된 타협속에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며 조선 사회에서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실천으로서 의료 활동이 갖는 중요성과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 의국의 역사적 가치를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
조선후기, 의학관료로 살기박훈평박훈평의 저술 『조선 후기, 의학 관료로 살기』는 조선 후기 의학 관료 제도 전반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며, 의학 관료가 되기 위한 의학 생도, 습독관등의 교육과정과 의과와 취재라는 채용방식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특히 내의원, 전의감, 혜민서라는 삼의사(三醫司)의 역할과 그 소속 의관들의 지위 차이를 비교해 설명하며, 왕실 주치의인 어의가 되는 길과 지방 의관인 심약의 임무 및 약재 관리 문제, 분차 의관인 활인서, 군문약방의 역할까지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 후기 의료 행정 시스템과 의관들의 삶, 그리고 당시 의료계의 변화상을 포괄적으로 조망하는 안내서이다. -
조선 시대 사람들이 경험한 질병의 고통과 치료김성수이 책은 조선 시대 사람들이 겪은 질병의 고통 및 치료와 관련해 질병 발생의 사회적 맥락과 의료 제도의 운영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우선 조선 사회의 열악한 농업 환경으로 인한 굶주림과 이로 인한 면역력 저하가 다양한 질병과 전염병 창궐의 근본적인 원인임을 지적한다. 조선 시대 의료는 철저한 신분제 원리에 따라 작동하였으며, 사회적 지위에 근거해 의료 혜택이 차별적으로 제공되어 왕실과 양반층이외의 사람들은 의료 접근성이 극히 낮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 초기에는 중국 약재 의존에서 벗어나 백성들에게 의료 혜택을 실현하려 했고, 후기에는 전염병인 두창(천연두)에 대한 국가적 중시와 함께 우두법(牛痘法)의 도입이 질병 통제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음을 설명하며 시기별 특색을 살피고 있다. -
조선 사람들의 약국 이야기김덕진이 책 『조선 사람들의 약국 이야기, 강진 박약국』은 조선 후기 전라 병영 인근에 위치했던 강진 박약국의 경영 실태를 상세히 분석한 저술이다. 저자는 박약국이 약재와 의약을 매매했던 전통 약국이었으며, 박재빈-박장현-박윤원으로 이어지는 3대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운영한 판매, 매입, 외상 장부등 희귀한 문서를 분석하여 당시의 의약 분업 체제, 약재 유통 경로, 결제 관행, 그리고 활동의 기반이 된 지역사회와 기층문화를 조명하고 있다. -
500년 전의 조선 사람들, 팬데믹에 할퀴다이경록이경록의 저술 『500년 전의 조선 사람들, 팬데믹에 할퀴다』 는 1524년부터 1525년까지 조선 중종대에 평안도를 강타했던 유행병(여역, 厲疫)의 양상과 조선 정부의 대응을 상세히 다룬다. 특히 유행병 창궐 배경을 여진족 축출 작전과 같은 대규모 인구 이동 및 교류 증가와 연관 지어 설명하며, 초기 충격 단계부터 확산 단계를 거쳐 중앙정부가 어떠한 조치를 취했는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석해 낸다. 이와 함께, 저자는 중앙정부의 전염병 대응책과 노력을 설명하며, 전염병으로 인해 황폐해진 평안도의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죄수와 토호를 대상으로 한 강제 이주 정책인 전가입거(全家入居)를 추진하는등, 질병을 단순히 의학적 문제가 아닌 국방 및 정치적 문제로 인식했던 당시 조선 사회의 특성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