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홍양호의 1782년(정조 2) 연행 당시 지은 시 모음집.

홍양호(1724~1802)의 본관은 풍산, 자는 한사(漢師), 호는 이계(耳溪)이다. 4대조 홍주원인 선조의 장녀 정명공주와 혼인하여 영안위(永安尉)에 봉해졌다. 1752년(영조 28)에 정시 문과에 급제한 후 청요직을 두루 거쳤다. 홍양호는 1782년, 1794년(정조 18)에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는데, 1782년 동지겸사은부사 때 지은 시들의 모음이 『연운기행』이다.

홍양호는 1782년 동지겸사은부사로 연경에 다녀왔다. 당시 정사는 정존겸(鄭存謙), 서장관은 홍문영(洪文泳)이었다. 1782년 10월 22일 한양을 출발하여 12월 20에 북경에 도착했고, 1783년 3월 28일에 한양으로 돌아와 정조에게 복명했다. 이 연행 여정을 통해 기록된 113수의 시들은 지나는 지역마다 관련된 우리의 역사, 인물, 사건 및 중국과의 관계, 혹은 중국의 역사 인물, 고전, 중국의 풍습 등 다양한 소재로 기록되었다. 홍양호는 1794년(정조 18)에 다시 동지겸사은정사로 연행하는데, 이 때 아들 홍희준(洪羲俊)을 데려가면서 자신의 시문집을 가져갔고, 연경에서 아들을 통해 예부상서(禮部尙書) 기윤(紀昀, 1724~1805)에게 서문을 받았다. 1843년 손자인 홍경모가 문집을 간행할 때, 1794년 연행 때 지은 「연운속영(燕雲續詠)」을 묶어서 수록했는데, 이 「연운속영」도 「연운기행」과 마찬가지로 홍양호가 직접 정리해 둔 것으로 보인다.

『이계집』은 여러 이본이 존재한다. 손자 홍경모(洪敬謨)가 1843년(헌종 9)에 간행한 문집으로서, 원집 38권, 외집 12권 합 50권 22책이다. 표제에 ‘계묘(癸卯, 1843) 신편(新編)’ ‘사의당장(四宜堂藏)’이라 부기(附記)되어 있다. 「연운기행」은 『이계집』 권6에 수록되어 있다. 현재 규장각, 장서각,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연행록은 조선시대 중국에 다녀온 사신이나 그 수행원이 남긴 보고서나 기행문을 일컫는다. 내용은 대개 사신들의 일정과 사행 의식, 조선과 중국 문인들의 학술적, 문학적 교류 상황, 중국 문물이나 제도의 견문, 체험 등이 다양하게 기록되었다. 「연운기행」에는 초기 시집위주 형태의 연행록으로 볼 수 있는데, 총113수가 수록되어 있다.

「연운기행」에는 한양을 떠나서 파주, 개성, 평양, 안주, 의주, 구련성, 책문, 요동의 석문령, 태자하, 심양, 의무려산, 영원성, 산해관, 고려보, 연경 동악묘, 옥하관 등의 일정이 나타나 있다. 이 곳들을 지나면서 관련된 역사나 인물, 사건을 떠올리며 감회를 시로 썼다. 예를 들면 파주 화석정에서는 이이를 회상했고, 개성에서는 고려왕조와 정몽주를 떠올렸고, 평양에서는 기자묘, 안주에서는 살수대첩을 떠올렸다. 중국 땅으로 들어서서 요동의 석문령에서는 요동의 옛 역사를 회고하며 과거 우리의 강역이었음에도 지금은 남의 땅이 된 안타까움을 표현했고, 영원성에서는 명나라 장수를 추억했다. 병자호란 때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들의 정착촌인 고려보에 들러서 조선인 풍습이 여전함을 읊었고, 조선 사신들의 숙소 옥하관에서는 멀리 떠나온 여정과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이 외에도 청나라 호부시랑 김간(金簡)과 주고받은 시가 있고, 맨 뒷부분에는 청나라 학자 대심형(戴心亨)이 홍양호의 「요계잡영(遼薊雜詠)」을 읽고 칭찬한 제평(題評)도 실려 있다. 요동지역의 풍습, 한족의 풍습, 정월 보름날 관등놀이 등 중국의 풍습에 대한 시도 여러 편 수록되었다. 또 정존겸과 주고받은 시도 포함되어 있다.

조선후기 연행록의 한 사례이자 홍양호의 역사관, 세계관, 외교관이 잘 드러난 시집이다. 홍양호의 역사과 고전, 지리에 해박함이 보이며, 조선과 중국 학자들 사이의 교유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또 공식적인 사행활동과 아울러 여정을 통해 직접 견문과 인식을 넓히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