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학자이자 관료인 임경창이 다양한 성씨들의 상대(上代) 계보를 편집한 족보집.
보학에 해박했던 임경창(1611?-1690?)이 여러 성씨들의 연원과 계보를 종합하여 편집했다. 풍천임씨, 남원양씨, 강성문씨(江城文氏) 등 각 성씨의 시조와 계보가 정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대부터 그의 명성과 『성원총록』이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후기 활발한 족보편찬에 활용되었다.
임경창은 본관이 풍천이고, 호는 도농(陶農)이다. 아버지는 임공(任鞏), 어머니는 이유서(李惟恕)의 딸 전주 이씨이다. 동생은 임수창(任壽昌)이다. 빙고별첨(氷庫別檢), 종부시직장(宗簿寺直長),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양지현감(陽智縣監), 의흥현감(義興縣監) 등을 역임했다. 1679년(숙종 5) 이유정(李有湞)의 흉서(凶書) 사건에 연루되어 불고죄(不告罪)로 유배갔다가 보첩(譜牒)을 잘 안다는 이유로 숙종의 은혜를 받아 풀려났고, 『선원록(璿源錄)』 이정작업에 투입되었다. 임경창은 이미 당대에 보첩의 대가로 알려져 있었고, 『성원총록』도 유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필사본으로 추정되며 구체적인 권수나 발행시기 등은 알 수 없다. 양응수(楊應秀)의 『白水先生文集』, 황윤석(黃胤錫)의 『이재난고(頤齋亂藁)』, 이규경(李圭景),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등에 언급되고 있다. 임경창 당대 이후로 여러 집안의 족보편찬에 참고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족보는 한 가문의 혈통과 계통에 관한 내용을 적은 책으로서 고려 때부터 만들어졌다고 한다. 고려 왕실은 보첩(譜牒), 지배층들은 ‘가첩(家牒)’, ‘가보(家譜)’, ‘가승(家乘)’, ‘세보(世譜)’ 등의 족보를 정리한 것으로 보이지만, 현존하지 않고 관련기록이 묘지명에 전해진다.
조선 전기의 경우 가문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같은 성씨뿐 아니라 혼인한 다른 성씨의 인척까지 망라한 족보가 편찬되었는데, 현존하는 『문화유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각 성관(姓貫)별로 족보 편찬이 활발해졌고, 서원의 발달과 함께 지방 향촌의 사족 및 관직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가계를 정리하면서 족보를 간행하게 되었다. 이런 경향과 함께 특히 보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보학은 우리나라 여러 성씨와 그들 씨족 내의 주요 계파들의 내력 및 배출된 주요 인물들의 가계 배경에 관한 지식이다. 따라서 보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인물들이 여러 형태의 종합보를 만들었는데, 만성보(萬姓譜), 대동보(大同譜), 잠영보(簪纓譜), 동국세보(東國世譜), 팔세보(八世譜), 십세보(十世譜), 팔고조도(八高祖圖) 등을 들 수 있다. 17세기 임경창의 『성원총록』을 비롯하여 조종운의 『씨족원류(氏族源流)』, 정시술의 『제성보(諸姓譜)』 등이 유명하다. 이들은 저술한 종합보는 당대 여러 집안의 족보 편찬자들이 꼭 참고했던 자료였다.
『성원총록』의 완전한 형태는 알 수 없으나 여러 성씨의 족보의 인용사례를 통해 살펴보면, 성씨의 시조, 특정계파의 중시조로부터 성씨의 계보를 분류하여 수록했던 것으로 보인다. 각 성씨의 파보에서도 선조의 가계를 정리할 때 『성원총록』의 기록을 근거로 쓰고 있다. 새로운 족보를 편찬할 때에도 과거에 참고로 했던 족보의 내용을 수록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남평문씨 족보에 시조와 세계(世系)에 대한 근거로 인용한 부분이 『성원총록』 문씨상계(文氏上系)이다. 또 풍천임씨 족보에서는 『성원총록』 실책(室冊) 중 풍천임씨편을 근거로 삼고 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우리나라의 고증할 만한 보첩으로 ‘『동국제성보(東國諸姓譜)』 2권은 정시술(丁時述)이, 『성원총록』은 임경창이, 『씨족보(氏族譜)』 53권은 박사정(朴思正)이, 『백가보(百家譜)』 10권은 허함(許涵)이, 『씨족원류(氏族源流)』는 이경렬(李景說)이, 『씨족원류』 7권은 조종운(趙從耘)이 지었다.’라고 했다.
개별 집안 족보에서 인용한 사례를 통해 여러 성씨별로 시조에서부터 세세하게 분류하여 책과 편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규경이 제시한 보첩의 사례에서 다른 책들은 권수를 표기했지만 『성원총록』의 경우 제시하지 않았다.
조선후기 보학이 발달하고 족보편찬이 활발했던 상황을 반영한 대표적인 종합보이다. 임경창은 당대부터 보첩의 대가로 인정받았고, 숙종 대 『선원록』 이정사업에 특별히 차출될 정도였다. 그가 쓴 『성원총록』은 개별 집안의 족보 편찬의 기본적인 참고자료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보학이라는 학문적 영역 확립에 기여했고, 조선후기 사회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의미가 있다.
1. 원전
황윤석, 『이재난고(頤齋亂藁)』
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선원속보(璿源續譜)』
『숙종실록』
『승정원일기』
2. 인터넷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