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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김호근
정의

조선후기 경술일기를 작성한 유씨부인의 남편이며 장릉 참봉이자 문인임.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안동, 충청도 홍주 출신, 양부는 김화순(金華淳)이고 친부는 김기순(金箕淳)이다. 김호근의 9대조인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은 문과 급제 후 영의정을 역임하였고, 병자호란 당시 순절한 충신으로 유명하다. 8대조인 김광현(金光炫: 1584~1647. 문과 급제, 호조참판, 이조참판)이 홍주 갈산 상촌리에 터를 잡고 세거하게 되면서 그의 후손들은 수북공파’, 혹은 갈미김씨로 불리 우면서 번성하였다. 김광현의 자손들에게서 1894년 과거제 폐지까지 약 43명의 문과 급제자와 21명의 판서(실직), 1명의 정승이 배출되었다.

 

김호근의 증조부 김약행(金若行)은 문과 급제 후 정조의 스승, 승지, 순천부사 등을 역임한 후, 중화의 유일한 계승자인 조선을 황제국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상소를 올림으로써 유배를 간 인물이다. 김호근의 조부와 부친은 증조부의 유언에 따라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김호근은 첫째 부인에게서 2, 재혼한 유씨부인과의 슬하에서 21녀를 두었는데, 큰아들 병대(金炳大: 1842-1914)는 동부도사, 홍산현감, 외부주사를 거쳐 중추원 의관직을 역임하였고, 둘째 아들 병두(金炳斗; 1847-1924)는 정릉참봉과 의금부도사를 지냈다. 셋째 사위 이도재(李道宰)는 군부대신, 학부대신, 외부대신을 역임하였고, 친동생인 김학근(金鶴根)은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주요 활동

김호근의 공적인 활동은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부인이 언문일기인 경술일기를 집필한 유씨부인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경술일기에 등장하는 그는 당대 사대부 가문의 남성과 유사한 삶을 보낸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를 준비하고, 각종 가례의 수행, 봉제사·접빈객 수행, 소작지의 관리, 친족 및 현청 방문 등 외부 업무를 담당하였던 것으로 일기에 나타나 있다.

학문과 저술


참고문헌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승정원일기고종 26429, 고종 27810, 고종 31227, 고종 39328.

김희동, 나의 뿌리를 찾아서, (선인, 2007)

김현숙, 조선의 여성, 가계부를 쓰다, (경인문화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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