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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역중일기(曆中日記)
정의

18세기 대구부 해안현 옻골 출신의 백불암 최흥원이 50여 년간 책력 위에 쓴 생활일기.

편찬·간행 경위

일기는 1735년 아버지의 병이 위독하던 때의 일을 기록한 것으로 시작하지만, 일기를 본격적으로 쓴 것은 33(1737)세부터 82(1786)세까지이다. 현전하는 역중일기(曆中日記)는 최흥원이 책력 위에 직접 작성한 것을 최흥원과 몇몇 사람들에 의해 베껴 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용의 교정·수정·삭제 등이 이루어진 부분이 있다.

서지사항

저자 최흥원은 대구부 해안현 옻골 출신이다. 본관은 경주, ()는 태초(太初여호(汝浩), ()는 백불암(百弗庵)이다. 소과 초시에 합격한 이후 과거 공부를 접고 마을과 가정 경영에 몰두했다. 1739(영조 15) ‘부인동동약의 실시로 향촌 사회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 1770(영조 46) 영조의 명으로 경상감영에서 반계수록(磻溪隨錄)을 편찬할 당시 최흥원은 학문적 역량을 인정받아 교정을 담당했다. 대산 이상정(17111781), 남야 박손경(17131782)과 함께 영남삼로(嶺南三老)’로 불린다. 최흥원의 문인록인 급문록122명의 문인이 등재되어 있다. 1789(정조 13) 효행으로 정문이 내려졌으며, 백불암집(百弗庵集)87책이 전한다.

 

일기는 31(1735)세부터 82(1786)세에 사망하기까지 책력 위에 작성한 것으로, 햇수로는 50년이 넘고 글자 수는 17만 자가 넘는다. 일기는 모두 4권이다. 1은 부친상이 있던 1735년에 작성한 것과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던 1737~1746년의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21747~1755, 31756~1786, 4는 권3에 빠진 1756~1764년의 기록이다.

 

구성·내용

일기에는 최흥원의 가족과 친인척을 비롯한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최흥원이 주변인들과 주고받은 이야기와 사건들이 시간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흥원은 가장(家長)으로 가정을 경영하는 가운데 농사짓기, 주변인들과 주고받은 선물과 부조, 상장례의 운영, 아들과 조카 및 친인척의 혼례, 자제의 교육 방식,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의 질병과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의 치료와 대응방식 등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조제고(助祭庫휼빈고(恤貧庫)의 운영, ‘부인동동약의 실시 등의 친족과 향촌 공동체 운영과 관련된 내용도 확인할 수 있다.

일기에는 최흥원의 학문과 정치적 성향 및 지방관과의 교유도 잘 드러난다. 최흥원은 영남 남인 및 근기 남인들과의 교유에 적극적이었다. 당시 영남지역 퇴계학파의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명인 대산 이상정과의 교유를 통해 최흥원이 퇴계학파로 편입되는 상황 및 자제들이 이상정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수학하도록 한 내용도 알 수 있다. 최흥원은 경상감영에 부노(府奴)를 파견하여 머물게 하면서 지방관들과 교유하는데 편리하도록 했다.

 

일기는 18세기 대구를 배경으로 최흥원과 주변인들과의 일상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사건과 상황 및 최흥원과 교유했던 인물들과의 이야기들이 시간순으로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는 최흥원 개인에 대한 이해를 넘어 18세기 대구와 영남 사족의 동향이나 사회상 등을 규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료이며, 역사·철학·민속·정치·예술·음식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참고문헌

역중일기(曆中日記)

국역 역중일기 1~7(한국국학진흥원, 2021)

김명자 외, 일기를 통해 본 18세기 대구 사림의 일상세계(새물결, 2019)

유교넷(https://diary.ugy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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