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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김건순(金建淳)
정의

조선후기 천주교인으로 신유박해 당시 처형된 인물. 김상헌(金尙憲)의 봉사손(奉祀孫)으로 입후(立後)되어 신()안동김씨 문정공파(文正公派) 종손(宗孫)이었던 인물.

가계 및 인적사항

김건순은 신()안동김씨 김이구(金履九)와 유언수(兪彦銖)의 딸 기계유씨 사이에서 1776년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문정공 김상헌의 7대손이자 문충공(文忠公) 김수항(金壽恒)5대손이었다. 세거지 이름을 따서 장동김문(壯洞金門)이라고도 알려진 이 가계는 순조비 순원왕후(純元王后)를 비롯해 세 명의 왕후를 배출하면서 당대 세도가(勢道家)로 여겨졌다. 더구나 김건순은 불천위(不遷位)가 된 김상헌의 봉사손으로 입후되어 종손이 되었다. 추후 사학(邪學)에 연루되어 1801년 체포되고 처형당하자, 종가에서는 그를 파양(罷養)하여 본가로 되돌려 보냈다. 배우자는 유한재(兪漢宰)의 딸인 기계유씨였으며, 기록상 자녀는 없다.

주요 활동

김건순의 활동과 행적은 황사영의 백서(帛書), 천주교 신부 샤를르 달레가 쓴 한국천주교회사(韓國天主敎會史),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등을 통해 재구성할 수 있다. 안동김씨와 기계유씨의 가학 전통을 물려받은 그는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었을 뿐 아니라 불교와 노자(老子) 사상을 배우는 등 성리학 이외의 사상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김건순은 10대 때부터 서학(西學) 관련 서적을 읽기 시작하였다.

천주교 교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김건순은 권철신(權哲身)과 교류하면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797년에는 상경하여 국내에 들어와 숨어 지내던 청의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만나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같은 해에 발생한 강이천(姜彝天) 사건에 연루되어 고발당하는 일이 있었으나, 당시 정조는 그가 김상헌과 김수항의 봉사손이라는 점을 들어 그를 처벌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건순은 천주교에 더 빠져들어 1799년 영세를 받아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정약종(丁若鍾)과 교리서인 성교전서(聖敎全書)편찬 작업을 진행하다가, 18013월 사학 죄인으로 체포되어 참형에 처해졌다. 심문기록에 따르면 그는 처음에는 천주교 및 주문모 신부와의 관련성을 부정하였으며, 나중에는 천주교 서적을 읽고 주문모 신부를 만났다는 정도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천주교 측 기록에는 그가 끝내 신앙을 지킨 순교자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차이를 보인다.

 

학문과 저술

황사영이 쓴 백서에 따르면 김건순은 10여 세에 천당지옥론(天堂地獄論)을 저술하여 천당과 지옥의 존재를 밝혔다고 하지만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황사영, 백서(帛書)

한상우, 입양, 양반층의 아들 교환, 세창출판사, 2023

임혜련, 정조 말순조 초 김건순(金健淳)의 행보와 신유사옥(辛酉邪獄), 한국학논총5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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