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 유람의 여정, 견문, 감상, 소회, 창작 시문 등을 적은 산문 형식의 글

산수유기는 주로 전근대 시대에 창작된 유람 기록이다. 여기에는 산수의 현상, 유람의 여정, 작자가 유람 시 느낀 감회와 소회, 당시의 역사‧생활상 등이 다양하게 담겨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관광기‧기행문‧여행기와 같은 개념의 글이다.

전근대의 유람 기록은 ‘산수유기‧록(山水遊記‧錄)‧’산수기(山水記)’‧‘유산기‧록(遊山記‧錄)’‧‘유기류(遊記類)’‧‘여행일기[紀行日記]’ 등 다양한 장르와 호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산수기’는 지리적 현상에 대한 객관적 설명과 보고적 성격이 짙고, ‘유기(록)’는 작자의 유람 여정을 비롯하여 노니는 즐거움과 명승에 대한 묘사와 감상이 충실히 반영되어 있다. 이는 이륙(李陸, 1438~1498)이 지리산을 대상으로 ｢유지리산록(遊智異山錄)｣과 ｢지리산기(智異山記)｣의 두 기록을 남긴 예에서도 살필 수 있다. ‘산수기’라는 제명(題名)의 저작 중에서도 내용이 ‘유기(록)’의 형식을 띠는 것들도 있지만, 가장 많은 작품이 출현한 조선시대의 유람 저작은 대체로 ‘유기’의 형식을 띠고, 날짜 별로 기록한 ‘일기’ 형식을 갖춘 것도 있다. 유람 기록 대부분은 자연을 유람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물과 마을 등 주변의 다른 경관을 보고 느낀 내용도 담고 있다. 또한 선유(船遊)만을 기록한 것도 있다. 그러므로 ‘유산기’라는 호칭은 유람 대상이 산에만 한정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므로, 유람 기록은 견문과 감상의 대상을 넓혀 자연계를 의미하는 ‘산수유기’로 지칭하는 것이 무난하다.

산수 유람은 고대부서 시작되었으나 전하는 산수유기는 없다. 산수유기는 고려시대에 등장한다. 이인로(李仁老, 1152~1220)의 󰡔파한집(破閑集)󰡕에 수록된 지리산 청학동 유람 내용, 진정국사(眞靜國師)의 ｢유사불산기(遊四佛山記)｣, 이곡(李穀, 12198~1351)의 ｢동유기(東遊記)｣, 임춘(林椿)의 ｢동행기(東行記)｣, 안축(安軸, 1287~1348)의 ｢관동와주(關東瓦注)｣,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등이 있으나 극히 소량이고, 현존하는 산수유기는 조선시대 것이 대다수다.

산수유기의 작성은 유람이 가장 유행하는 조선 후기에 개화한다. 조선시대 산수유기가 증가하는 배경은 유람의 성행이라는 문화적 현상에 기인한 것에 더하여, 명(明)나라에서 유입된 산수유기의 영향이 크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후기 유람이 크게 유행하면서 산수유기가 왕성하게 창작되고 출판‧유통되면서 많은 독자를 확보하는 대중적 독서물이 되었다. 명나라 산수유기는 16세기경에 조선으로 유입되었고, 조선 문인들이 애독하며 와유(臥遊)의 자료로 삼았다. 명나라 산수유기에 대한 조선의 관심은 조선의 산수를 대상으로 하는 산수유기를 모으고 작성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조선시대 주요 유람 층은 사대부였으므로 산수유기의 작자 대부분도 사대부이다. 사대부들은 유람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향후 유람의 도구서가 될 수 있게 하였다. 앞 사람이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으면 새로이 기록하고 앞 사람의 기록이 미진하면 보충하는 것이 관례였다. 결과적으로 전대부터 누적되어 온 산수유기는 후대로 갈수록 유람을 더욱 유행시키는 전거가 되었고, 유람의 유행은 또다시 산수유기의 양적 증가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 수많은 산수유기의 양산은 유람문화의 유행이 가져온 문화적 산물이다.

산수유기는 시로 남긴 것도 있지만 대부분 산문 형식이다. 조선시대에 창작된 국내 산수유기는 약 1,500편에 달한다. 이는 한문으로 작성된 산수유기에 한정한 것이다. 여성들이 한글로 작성한 산수유기도 있으나 희소하고, 한문 산수유기의 작자 대부분도 남성이다. 1,500편이라는 수치도 얼마든지 가변성이 있다. 사장(私藏)되어 현재 밝혀지지 않은 산수유기가 산재해 있어 그 숫자는 더욱 방대할 것으로 여겨진다. 일제강점기에도 작성되므로 지속적인 발굴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