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나 물건의 명칭 및 수량을 열거한 기록으로 왕실발기는 조선왕실에서 작성한 물목 단자이다. 

왕실발기는 의례를 치르는 전 필요한 물목을 기록한 몰목단자이다. 발기자료는 현재 국내의 여러 연구기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중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가장 많은 948건이 소장되어 있다. 이외에 경상대학교 고문헌도서관에는 206건, 국립고궁박물관에 6건, 궁중음식문화재단에 4건, 뮤지엄 김치간에 1건 등 모두 1,165건이 전해오고 있다. 이들 자료는 본래 창덕궁의 낙선재에 모여 있던 것이 여러 곳으로 흩어진 것으로 확인된다.

이들 자료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1823년(순조 23) 순조의 첫째 딸인 명온공주 가례시 부마의 삼간택을 치르는 과정을 기록한 단자이다. 또 가장 늦은 시기에 작성된 것은 1930년 의친왕비인 이강공비를 비롯해 내빈들에게 내신 음식발기이다. 한편 가장 많은 수가 남아 있는 왕실발기는 1882년 순종이 왕세자 시절 치른 가례와 관련된 자료이다. 특히 왕실발기에는 점을 찍은 자료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필요한 물목을 해당 관아인 상의원이나 사옹원, 호조 등에서 올리면 대전이나 중궁전에서 확인하고 감결(甘結) 또는 재가(裁可)한 것으로 보인다.

왕실발기는 궁체로 쓴 한글이 대다수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동일한 자료가 한자로도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한글의 경우에는 상궁이 썼을 것이며, 한자는 관아에 소속된 관리가 썼을 것으로 보인다.

왕실발기가 처음 작성될 때에는 낱장으로 된 종이 문서였을 것으로 보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 자료를 묶어 성책의 형태를 갖춘 것, 또 여러 겹의 종이를 붙여 분판(粉板)의 형태로 만든 것, 절첩형, 두루마리 형태로 말아 놓은 것 등이 확인된다. 종이로 된 왕실발기는 소색의 한지를 여러 장 연결하여 붙이기도 하고, 여러 색의 한지를 붙여 만든 것도 있다. 또 두꺼운 장지를 비롯해 저지에 쓴 것도 확인되며, 인찰지에 작성된 것도 있다. 왕실발기 자료 중 가장 긴 것은 1894년 2월 순종이 태어난 것을 기념해 내린 상격(賞格) 발기로 세로 길이가 32.3cm, 가로 길이가 2,500.3cm이다. 절첩형으로 된 것은 1911년 신주를 다시 신실로 옮겨 봉안하면서 작성한 <신ᄒᆞㅣ오월십칠일 환안시 발기>로 장지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상의원에서 올린 왕친어의대계품안(王親御衣襨啓稟案)에는 임금이 점을 찍어 존감(存減)을 표시하였다. 이는 불필요한 물목을 제작하는 것을 막기위한 것으로 왕실에서부터 절용(節用)에 힘쓰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의의 및 평가]

현전하는 왕실발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의례는 길례, 가례, 상례 등이다. 이들 의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제작된 복식, 음식, 기물을 비롯해 직물, 금침, 문방용품, 장신구 등은 물론 참여자의 이름과 함께 의례를 치른 후 상격을 내린 물목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히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복시발기는 단순히 복식명을 확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의례의 절차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기록문화를 뒷받침하여 보다 상세하고 구체적인 왕실문화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단순히 낱장의 고문서에 몇글자 되지 않는 기록이라 할지라도 당대의 사건과 사회문화적 맥락을 재구성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써의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