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물(景物)과 문물(文物)을 보고 즐기며 심신을 수양하는 등의 문화 행위
유람은 일상의 번다함에서 벗어나 산수(山水)나 문물을 두루 보고 즐기며 강학(講學)이나 시문을 창작하는 등 심신을 수양하고자 선조들이 선호했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풍류(風流) 문화이다. 이는 오늘날의 관광‧기행‧여행과 상통하는 의미이지만 전근대에는 이러한 행위를 ‘유람’이라고 했다.
유람문화는 명확히 어느 시기에 어느 장소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발달해 왔는지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력이 생기면 잠시라도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이나 일상에서 벗어나 심신을 쉬이고자 하는 기대를 품는다. 어디론가 길을 나서 새로운 경물이나 문물을 보고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유람은 산수를 구경하며 그 속에서 흥취를 즐기고자 하는 내면적 의식의 발현으로 발달해 왔고, 선조들이 가장 애호한 유람 처는 산수였다.
유람은 신라의 화랑들이 금강산 등지를 유오산수(遊娛山水)한 사실 등을 통해 고대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적은 양이나마 고려시대에도 유람 저작이 있어 당시 유람의 일면을 살필 수 있으나, 선풍을 일으키며 유행한 시기는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이다. 15~16세기는 본격적인 유람문화의 형성기이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주목되는 문화 행위로 확산하여 17~18세기는 정착기, 18세기 이후는 유람문화가 일반화되는 보편기로 규정할 수 있다. 다만, 유람은 경제적 능력과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대부(士大夫)만이 할 수 있는 상류층의 문화였다.
사대부들은 조선 전기까지만 하더라도 조선의 산수에 대한 관심보다는 중국의 산수를 동경하는 경향이 강했다. 중국의 산수를 모방한 산수화나 유람 저작 등을 구해서 와유(臥遊)를 즐겼다. 중국은 쉽게 갈 수 없는 나라였으므로 조선의 사대부들이 중국을 존모하고 그 산수와 문물을 동경하는 경향은 조선 후기에도 나타났으나, 조선 산수에 대한 관심도 심화한다. 국내의 산수를 유람하는 현상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두드러진 증가세를 보인다.
사대부들은 공자(孔子)의 태산(泰山) 등정과 주자(朱子)의 형산(衡山) 유람을 본받아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요체를 터득하고자 산수 유람에 나섰다. 유람은 심신을 쉬이고자 하는 여가의 의도가 공존하지만, 도(道)를 체득하여 학문을 도야하고 자신을 수양하는 행위였다. 산수는 구도(求道)의 공간, 강학(講學)의 공간, 심신 수양의 공간이었다.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일생에 한 번이라도 산수 유람을 다녀오지 않으면 문화 흐름의 대세에 무지몽매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정도였다. 어떤 이들은 유람을 통해 즐기고자 했던 산수를 늘 그리워하며, 고질병 환자처럼 산수에 대한 혹독한 애착심으로 인해 산수벽(山水癖)을 관념처럼 지니고 살았다. 산수에 취해 평생 유람을 다닌 사람도 있었다. 사대부들 사이에서 가장 장쾌하고 호탕한 일을 꼽으라면, 단연 유람이 제일이었다.
사대부들이 선호했던 유람 처의 첫째 조건은 수려한 경관이었다. 주로 금강․묘향․지리․청량산 등 당대 명산을 유람했다. 그중 금강산과 관동팔경이 유람의 명소로 가장 칭송받았다.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함께 유람하는 것은 산수 유람을 꿈꾸던 사람들에게 최고의 코스이자 로망이었다. 그리고 유람을 통해 산수 체험과 더불어 명현의 자취를 찾는다. 이것은 사대부들의 유람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한 단면이자 전통이었다. 대표적인 곳이 청량․지리‧속리산 등이었다. 청량산은 이황(李滉, 1501~1570), 지리산은 조식(曺植, 1501~1572), 속리산은 송시열(宋時烈, 1607~1689) 같은 거유(巨儒)가 그 산을 애호하고 유람했을 뿐 아니라 산록에서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했다. 이 산들은 수려한 경승만으로도 유람객을 들끓게 하는 매력이 있었지만, 명현(名賢)의 도학(道學)이 깃든 유람처로 선호되었다.
유람은 일시적 행위 현상에서 그치지 않고, 기행문인 산수유기(山水遊記)나 시문(詩文)‧기행사경도(紀行寫景圖) 창작, 각자(刻字) 문화의 성행 등 다양한 문화를 배태하고 촉진하기도 했다.
▸이상균, 조선시대 유람문화사 연구(경인문화사, 2014)
▸이혜순 외, 조선중기의 유산기 문학(집문당, 1997)
▸최강현, 한국 기행문학 연구(일지사,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