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경주 갓뒤마을에서 구성원들이 협업하여 숲을 조성하고 가꾼 내용을 수록한 자료.
갓뒤마을에서 조직한 지북동 동계의 계주와 유사 등이 계원들의 합의 내용과 계원의 명단을 축적하여 정리한 내용이다. 갓뒤마을은 지북동으로 오늘날 경주 황성동일원에 해당한다.
1764년(영조 40) 지북동안 서문에 의하면 지북동에서 동계를 조직한 역사가 오래라는 사실과 함께 일찍이 마을에서 땅을 사고 숲을 조성한 내용을 밝혀 적고 있다. 이런 사정으로 지북동안은 마을의 중요 재산인 숲을 가꾸고 숲에서 주는 이익을 지키기 위한 동계의 성격을 보여준다.
지북 동계의 이러한 성격은 지북동안과 함께 전하고 있는 지북동중절목(枝北洞中節目)에서 보다 자세히 알 수 있다. 이 자료에는 1730년(영조 6) 동계에서 수년 동안 재원을 모아서 마을 인근의 땅을 사고 계원들이 함께 나무를 심은 내용이 있다. 심지어 5년 전의 규약에는 마을 공동 노동을 위해 함께 노동하는 결의 내용을 담고 있어 나무를 심기 위한 준비를 먼저 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후 나무가 자라자 땔감이나 건축자재를 목적으로 숲을 훼손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별도의 결의를 담고 있다.
지북동안은 마을 숲을 조성하고 30년 즈음 지난 시점에서 다시금 안정적인 숲을 가꾸기 위해 구성원을 단속하고 결의를 모으는 목적에서 작성한 결과물이었다.
동안은 모두 2책이다. 1764년∼1772년(영조 48)의 내용을 수록한 1책과 1830년(순조 30) 중수한 내용이다. 5침 장정의 성책 자료로, 앞의 자료는 황색표지에 내용을 담은 반면 후자는 청색 표지를 사용한 차이가 있다.
18세기 동안은 동계의 서문, 계원들의 합의 내용이라 할 수 있는 다수의 입의(立議) 그리고 계원의 명단인 좌목(座目)으로 구성하고 있다.
1764년(영조 40)서문은 마을의 안녕을 위해 일찍이 숲을 조성한 사실과 이를 계속 가꾸어 물려주어야 할 필요성을 재확인하면서 동계를 중수한 의미를 강조했다. 그리고 완의는 1764년∼1772년(영조 48)까지 6차례 개정한 내용이다. 완의는 마을 계원의 완전한 합의에 의해 개정한 결과로, 주요 골자는 숲을 가꾸는 책임자의 책무를 강조하기 위한 방안이다. 좌목은 이 시기 계원의 명단을 동장(洞長)과 유사 등을 별기하면서 남성의 성명을 한줄씩 밝혀서 적었다.
1830년(순조 30) 중수한 지북동안은 중수 서문과 좌목을 수록했다. 서문은 계의 유구한 역사와 가치를 계승해야 하는 필요성을 호소한 내용이며, 좌목은 또한 남성 계원의 명단 134명이다. 좌목에는 조선후기 경주부의 무임들의 공간 강무당에서 활동했던 인물이 다수 있는데, 이는 지북동 마을 구성과 계원들의 성격이 중인들이라는 암시이다. 그리고 좌목은 이후 중수까지 계속 관리하였는데, 기록 중 ‘선(仙)’으로 부기 하여 세상을 떠난 계원이나 ‘상임(上任)’으로 전임 계주나 풍헌(風憲)을 부기하여 지역사회 행정의 말단에 참여한 여러인물들 기록이 다수 있기 때문이다.
[의의 및 평가] 3줄→4줄
조선시대 동계의 활동은 ‘환난상휼(患難相恤)’을 표명하고 있으며, 주도 세력인 양반에 의한 권력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경주 갓뒤마을의 지북동계는 양반이 아닌 중인층이 주도하여 마을 구성원의 공동 이익을 위해 숲을 조성하고 이를 가꾸는 협동을 실현했다는 의미에서 조선시대 마을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1. 원전
『지북동안(枝北洞案)』
지북동중절목(枝北洞中節目)
2. 단행본
배수호·이명석, 산림공유자원관리로서 금송계 연구(집문당, 2018)
정수환, 『활 쏘는 사람들과 나무 심는 마을 (세창출판사, 2023)
조철제, 『경주부의 역사』(학연문화사, 2024)
3. 논문
김경숙, 「19세기 향촌 사대부가의 산송 실태와 체송」(역사학연구66, 2017)
배병일, 「마을재산의 소유권의 발생과 변동에 관한 연혁적 연구」(법학논고53, 2016)
정수환, 「18세기 경주 갓뒤마을 동계의 말림갓을 위한 호혜와 협동」(역사학보 2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