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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해 배씨 집안의 묘사시(墓祀時) 홀기(笏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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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일(黃河一) 등이 정묘년에 보습록(補拾錄)의 진위여부에 대해 진술한 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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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주 등이 무신년에 병산서원에 보낸 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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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 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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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을 잃은 아우의 슬픔을 담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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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이 기해년에 류이좌(柳台佐)에게 내린 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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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훈(許薰)이 풍산 유씨가의 모인을 애도하며 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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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풍 3년 안동부에서 권시유, 임응룡의 토지 개간을 승인한 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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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 김응조가 김우익에 대하여 지은 묘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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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석중 등이 안동부에 올린 상서의 초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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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원부원군이 수급자 미상에게 지어준 정평공 유허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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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김씨가의 장지택정기(葬地擇定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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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김씨 일족 6명이 1897년에 삼진(三津) 석역소(石役所)의 여러 어른께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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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별지(稟目別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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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보가 미상인에게 안부를 묻는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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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순이 이(李)군에게 선비의 자질을 가르쳐 주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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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재 유사 금기익 등 3인이 1928년에 문중 사람들에게 회합일자를 알린 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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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금(秋金)이란 노비가 상전댁(上典宅)에 간곡히 부탁하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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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마 거주민들이 고종 17년에 신호(新戶)의 회호조(回戶條)와 역 부과 문제에 관해 합의한 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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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선사(彰善祠)의 유림들이 신사년에 하중환(河中煥)씨에게 2원을 보내며 함께 보낸 단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