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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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농민들의 농사짓기염정섭-한림대학교 사학전공 교수황희와 노농의 일화에서 역사는 유명한 사람들의 힘, 이른바 영웅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설화에 나오는 노농과 같은 사람들의 자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웅변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살았던 노농의 자취를 나아가서 농민의 삶을 제대로 복원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모든 농업생산활동을 책임지고 수행한 사람이 바로 농민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과거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것이라고 한다면 남아 있는 자료를 통해서 그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살았던 자취를 복원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와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기르는 과정이 바로 역사이다. 우리가 농민의 삶을 대체적으로나마 재구성하고 여러 가지 요소를 통해서 설명하는 것은 바로 농민이 가진 역사적인 의미를 되살리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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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양반, 가정을 경영하다 -18세기 대구 최흥원의 가사활동을 중심으로-김명자-경북대학교 사학과 외래교수조선시대 사랑채에서 생활하던 남성은 집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생활했는지, 18세기 대구 옻골 출신의 최홍원이 50여 년간 쓴 <역중일기>를 통해 확인한다. 그는 아내와 일찍 사별한 후 안채의 여성이 담당해야 할 상당 부분을 메꿔야 했고 안팎의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생활밀착형 양반이었다. 그는 가장의 역할을 성실하게 묵묵히 견디어 옻골 최씨를 영남 지역에서 명망 있는 가문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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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조선의 종부를 만나다 -유씨 부인의 가계경영과 재테크-김현숙-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조선의 여성들은 사회, 정치적 대표성과 공식 권력에서 소외되고 유교 통치 이념을 통해 차이가 차별로 정당화되고 사회와의 접촉이 남성에 의해 중개되면서 사회적 위상이 하락되었다. 그러나 양반가 종부인 유씨 부인은 사회적으로 타자이지만 사적 공간의 실력자로서 자기 위상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즉 18, 19세기 몰락 양반들이 출현할 때 '치산'을 통해 가정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실력을 발휘함으로써 '사적 공간'을 인정받고 확보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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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미암 유희춘의 경제생활이성임-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우리는 양반의 경제생활에 대해서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먹고 사는 문제를 살피는 사실을 불경스럽게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양반은 세상사에 어둡다는 선입견이 있으며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문득 어느 교수님이 '양반은 푸줏간에 가지 않고 손으로 돈을 세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정말 그랬을까? 우리 안에는 그만큼 세상사와 동떨어진 양반의 모습이 자리잡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시대 청렴한 재상이라고 하면 황희 정승을 떠올리고 그의 최고 덕목으로 청렴을 거론한다. 선비는 가난에 개의치 않고 학문에만 전념했을 것이라 믿는다. 누구나 청백리 조상을 갖고 싶어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정말 청렴이 조선시대 양반을 대표할 만한 키워드가 될 수 있을까? 실재 모습을 유희춘이라는 인물이 작성한 일기를 통해 접근해 본다.